텍스트와 컨텍스트, 스웨이드와 마키니스트 날씨가 추워지면 옷차림을 고민할 때, 어떤 가방을 멜지 조금 더 생각하게 됩니다."이 가방은 너무 추워보이려나..."가방을 고르다 생각이 깊어집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이 두 단어는 주로 문장과 글을 다룰 때 쓰이지만, 사실 옷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두 단어 모두 옷감을 짜다(직조하다)라는 라틴어 textus(명사), texere (동사)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는 짜여진 것(옷감)을, 컨텍스트는 함께(con) 짜여진 것을 의미합니다. 단어를 직조한 문장과 글이 텍스트입니다. 글쓴이가 종이 위에 남긴 기호인 텍스트를 독자가 읽는 순간,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맥락이 컨텍스트입니다. 텍스트는 컨텍스트를 만나며 비로소 의미가 확정됩니다. 독자가 달라지면, 같은 독자라도 그가 처한 환경과 시대가 달라지면 컨텍스트가 달라집니다. 그럼 의미도 달라집니다. 오늘의 외출을 앞두고 드레스 룸 거울 앞에서 제가 고른 가방과 옷은 ‘텍스트’입니다. 현관을 나서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스쳐 지나갈 때, 제 옷차림은 ‘2025년 / 대한민국 / 겨울 / 영상 7도’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따뜻한 코트와 윗면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곡선을 만드는 스웨이드 백은 장소와 계절, 오늘의 날씨와 함께 해석됩니다. 보는 이에게 ‘따듯해 보인다’는 느낌, ‘계절감이 있는 패션’ 이라는 인상을 남깁니다. 그게 제 의도일 겁니다. ‘계절의 변화에 어울리는 센스있는 ootd를 갖춘 사람’ 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 테니까요. 텍스트로서의 스웨이드 스웨이드suede는 가죽입니다. 일반적인 가죽과 달리 연하고 부드러운 안쪽면을 바깥면으로 사용합니다. 안과 밖을 뒤바꾸는 이유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겉grain과 달리 연하고 부드러운 안쪽 면에 보풀을 만들어 따듯한 촉감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털을 세웠다는 뜻에서 ‘기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벅nubuck과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누벅은 겉면grain에 미세한 보풀을 만들어 낸 가죽입니다. 질감이 더 치밀하고 내구성도 강하지만, 부드러움에서는 스웨이드에 미치기 어렵습니다. 스웨이드는 원래 연하고 부드러운 안쪽에 보풀을 내어 바깥면으로 쓰는 것이니까요. 스웨이드는 다시 두 종류로 나뉩니다. 풀 그레인(이하 ‘그레인층이 살아있는’ 스웨이드를 통칭) 스웨이드와 스플릿 스웨이드입니다. 풀 그레인 스웨이드는 앞서 말한대로 겉grain을 안쪽으로 두고, 안쪽면에 미세한 보풀을 만들어 바깥면으로 쓰는 스웨이드입니다. 스플릿 스웨이드는 겉grain면을 포를 뜨듯이 분리한 뒤에 남은 가죽으로 만든 스웨이드입니다. 안쪽면에 보풀을 일으켜서 바깥면으로 쓴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그레인 층이 없어 섬유밀도, 탄력과 복원력이 낮습니다. 더불어 그레인층을 사용하고 남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어서 대체로 가격이 저렴합니다. 하지만, 스플릿 스웨이드라고 해서 단점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염료 흡수량이 많아 밝고 선명한 컬러를 표현할 수 있고, 가벼운 장점도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간초 콤비는 그레인 층이 남아 있는 스웨이드로 제작했습니다. 사이즈가 커 자체 하중을 많이 받는데다, 소판나투라 방식이 아니라 보강재가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형태라서 가죽 자체의 탄력과 복원력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또, 자연스럽게 주름잡히며 내려앉는 가방의 형태라 풀그레인 스웨이드의 장점인 깊이 있는 컬러감이 더욱 잘 발휘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마키니스트 제품 중 제오 콤비는 스플릿 스웨이드를 사용했습니다. 작은 크기에서도 스웨이드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표면의 질감과 컬러가 보다 극적인 스플릿 스웨이드가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마노를 만들기 위해 스웨이드 몸판은 소판나투라 방식(겉감과 보강재를 하나로 붙인 형태)으로 제작하고, 옆면과 바닥면은 가죽과 콤비로 제작하여, 스플릿 스웨이드의 낮은 강도를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마키니스트의 컨텍스트 겨울이면 스웨이드 소재에 유독 마음이 갑니다. 따뜻함을 느끼고,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간초 콤비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 같은 마음인 듯 해서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스웨이드가 겨울에만 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닙니다. 한반도의 여름이 유난히 무덥고 습하기는 하지만, 때로 컨텍스트를 비트는 발상이 가능한 것도 패션의 매력이니까요. 어떤 맥락에서 어느 정도로 비틀며 수용하고 재해석할지 저도 늘 - 옷과 가방을 고르는 매일 - 고민합니다. 마키니스트는 가죽과 보강재를 세심하게 고르고, 설계와 작법을 치밀하게 구성합니다. 아마 제 손을 떠난 그 가방은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놓일 겁니다. 튼튼하게 오래 쓰고 싶은 고객님과 함께 할 수도, 적당한 격식이 필요한 TPO에서 소유자의 품격을 지켜야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저는 어느 컨텍스트에서도 제 몫을 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스웨이드라는 쉽지 않은, 그렇지만 매력이 가득한 소재로 제작한 마키니스트의 스웨이드 콤비를 선택해주신 고객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양한 공간, 다양한 계절에서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